큐레이터 - 김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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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터 다이어리 ⑫]금남(?)의 현장에서 날 이끌던 목소리
“힘내요 미스터 김” 그 소리가 그립다
ⓒ2013 CNB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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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선화랑에 입사한 시기는 2006년 11월, 난 처음 큐레이터라는 업무보다 남자이기에 할 수 있는 일- 그림을 벽에 걸고, 무거운 짐을 나르고, 전구와 전시장 조명등을 갈아 끼우는 일을 했다.

서양화를 전공한 나는 졸업 이후 작가도, 공부를 많이 한 학예사도 아니거니와 외국유학 한번 다녀오지 못했고, 사회에서 인정받은 경험이 없었다. 그저 일일드라마 “힘내요 미스터 김”에 나오는 “미스터 김”과 같은 모습의 사람이었다.

단지, 열정과 친절 성실 신뢰와 하루하루 작은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일했었고, 7년이 지난 지금도 마음은 여전히 크게 달라진 것은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나를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 분이 있다. 이 글은 내가 선화랑에서 처음 만난 분, 그분이 불렀던 나의 호칭에 관한 이야기이다.

입사 후 5년 동안 달라진 것이 있다면 나를 부르는 호칭들이다. 호칭에 대한 변천사는 재미있다. 처음 입사 때는 “야” 또는 “너”, 입사 6개월이 지나 일 년간은 “미스터 김” 그리고 일 년간은 “김! 재! 훈!” (이름의 글자를 하나하나를 크게 불렀다.)

▲ 2011 KIAF 전시 전경. (사진 = 왕진오 기자) ⓒ2013 CNBNEWS
그리고 다시 일 년간은 “김재훈 씨!” 그리고 그 이후 2011년 6월 18일 전까지 “재훈아!”…. 일 년을 단위 바뀌는 이 호칭들은 (故) 김창실 대표님이 나를 부르는 호칭이었다. 그분은 큐레이터의 능력과 믿음이 생길 때마다 호칭이 조금씩 바꿔 부르셨다.

“재훈아!”라는 친근한 호칭은 일을 시작한 지 5년이라는 세월이 지나서야 불러주셨던 것처럼 말이다.

추석, 설 연휴를 빼고는 항상 화랑에 나오셨던 고(故) 김창실 대표님은 “재훈아! 넌 요즈음 너희 부모님보다 나랑 있는 시간이 더 많을 거야” 하시며 주말에도 쉬지 못하는 나를 위로해 주셨던 모습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 선화랑 30주년 기념전 당시 도상봉, 김형근 작품 앞에 선 고 김창실 대표. ⓒ2013 CNBNEWS
그땐 숨 고를 시간도 없이 빠듯하게 일이 진행되어서 항상 시간을 맞추느라 조마조마 발을 동동 구르면서 일을 했었다. 다만 누구의 강압으로 일 하기보다는 따뜻한 말 한마디에 위로를 받았고, 그것에 용기 얻어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난 입사 처음부터 손님들이 오시면 차를 만들어 정성껏 대접했다. 나는 지금 선화랑의 전시를 책임지는 큐레이터로서 자리매김하고 있지만, 지금도 손이 바쁠 땐 직접 하기도 한다. 나이가 지긋했던 고(故) 김창실 대표님이 보시기에 남자가 차를 나르는 일이 보기에 좀 안타까우셨는지 내게 꺼내신 말씀이 있다.

그때 내 호칭은 “야”였으니깐, “야, 사람 중엔 약방의 감초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어. 감초는 한약엔 빠질 수 없는 약초지. 넌 어디든 너를 빼놓으면 일이 안 되는 그런 사람이 되도록 노력 하라우!” 하시며 특유의 이북 사투리로 나를 위로해 주셨다.

“야”라는 호칭은 사회생활을 첫발을 내디딘 나에겐 가혹할 정도로 자존심이 상할 수 있는 말이었지만, 절묘한 타이밍의 채찍과 당근으로 금방 내 기분은 풀어졌다. 그리고 7년이 지난 지금 가끔 그분의 목소리가 그립다.

그분이 불렀던 나의 호칭 중 요즈음 가장 듣고 싶은 말은 “김!! 재!! 훈!!”이다.


자존심 구겼던 7년, 나를 가르친 7년

내가 어느 정도 화랑에 적응되어 본격적으로 큐레이터 일을 배우기 시작할 때 들었던 이 호칭은 큰소리로 나를 부르는 소리로, 나는 그 소리가 들릴 땐 내가 무엇을 잘 못하진 않았는지 하고 긴장을 하곤 했었다. 하지만 지금에서야 생각해보니 항상 긴장의 끈을 놓치지 말고, 열심히 일하라고 하는 구호와 같은 역할도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 당시 1층 전시장이 울릴 만큼 힘찬 그 목소리는 내 눈빛을 더욱 빛나게 만들어 주었다.

▲ 2012 화랑미술제 현장 모습. (사진 = 왕진오 기자) ⓒ2013 CNBNEWS
요즈음 미술시장 상황이 어려움으로 계속되는 가운데, 갤러리에서 일하는 친구들 그리고 나 역시 용기를 잃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고(故)김창실 대표님이 살아 계셨더라면 나에게 이렇게 말씀을 하셨을지 모른다. “야!, 하나하나 놓치지 말고, 착! 착 !착! 진행해라!!!” 내가 조급한 마음에 요령이라도 피울 것 같으면 호통을 치시며 하신 말씀이다. 기본적인 것을 중요시하셨던 그분은 힘들고 아무리 급한 일에도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순서와 진행의 자연스러움을 자주 강조하셨다.

지금 나에게 또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주 사소한 마음부터 행동까지 기본적인 자세를 다시 추스르는 일이 아닐까.

그 당시 나를 부르는 호칭들과 가르침이 내겐 쓴 소리이었지만, 나를 이끌어 주셨던 그분의 목소리에 대한 기억에 오늘도 나는 힘이 난다. "힘을 내요 미스터 김!"


- 글·김재훈 선화랑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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